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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콧수염이 아니야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0-02-03 09:59
조회
43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2015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 미군 태평양사령관을 지냈다. 그는 점심 식사 때면 태평양사령부 구내 샌드위치 가게에서 줄을 섰다. 해리스 사령관은 초급 장교, 갓 입대한 병사들과 나란히 줄을 서서 샌드위치를 사곤 했다.

점심때 소탈한 모습과 달리 해리스 사령관은 ‘강경한 사령관’(hardline commander)으로 불렸다. 원래 태평양사령부의 전력이 강했고, 여기에 해리스 사령관의 거친 캐릭터(성격)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미군은 10개 통합전투사령부(UCC)가 있는데 6개는 지역별, 4개는 기능별 사령부다. 미군 지역 사령부는 다른 나라 군대처럼 자국 영토를 나눠 지키는 게 아니라, `’세계 경찰’답게 지구 전체를 6개로 나눠 지역 사령부를 두고 있다.

하와이에 사령부를 둔 태평양사령부(2018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이름 바꿈)는 캘리포니아 등 미국 서부에서 인도양, 북극해, 남극해까지 지구 표면 52%가량 지역의 군사작전을 책임진다. 병력과 직원이 37만 명인 태평양사령부는 미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합전투사령부다. 세계 최대 규모 전력을 갖춘 태평양사령부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에 따라 최첨단 무기를 계속 배치해 전투력이 더욱 강력해졌다.

태평양사령관 시절부터 ‘설화’

공식 석상에서 솔직하게 말하기를 꺼리는 다른 군인들과 달리, 해리스 사령관은 공개적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해리스 사령관은 재임 시절 나흘에 한 번꼴인 277번의 크고 작은 연설을 했다. 그는 거칠고 직설적인 말로 ‘스트레이트 슈터’(straight shooter)로 불렸다. 해리스 사령관은 첫 연설에서 `‘북한, 중국, 지하드 등 극단주의, 러시아의 4대 도전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8년 5월 태평양사령관 이임식에서도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가장 임박한 위협”이라며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핵 탑재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태평양사령부가 오늘 밤 싸워야 한다면 나는 그것이 공정한 싸움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칼싸움이라면 나는 총을 가져오고 싶습니다. 그것이 총싸움이라면 나는 대포를 가져오고 싶습니다.”(해리스 사령관 미 의회 발언)

해리스 사령관은 재임 중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해 요새화하자, 미 해군 함정과 정찰기를 투입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며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맞섰다. 그는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든 중국을 향해 ‘모래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고 거칠게 비난했다.

중국은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각종 언행으로 태평양을 태평하지 못하게 만들어온 일본계 장성 해리 해리스” “미국 아태 정책의 매파” “오늘 밤에라도 전쟁을 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과격분자” 등으로 보도했다.

해리스 사령관에 대한 중국의 반감은 그가 일본계라는 점도 작용했다. 그의 아버지는 주일미군이었고,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20세기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데다 현재 일본은 미국의 중국 견제, 포위 전략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해리스 사령관 재임 시절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공격성이 갑자기 커진 이면에 해리스의 (일본계) 혈통 등이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고 공격했다. 일본계인 해리스가 일본 편을 든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해리스 대사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압력 행사, 금강산 개별 관광 제동 발언 등 고압적인 태도로 논란을 빚어왔다.

주권침해 비판을 인종차별 탓으로 되받아

그는 1월16일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일본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내 민족적 배경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콧수염이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을 연상시킨다는 지적과 관련해 “내 콧수염은 어떤 이유로 여기에서 일종의 상징이 됐다”고도 주장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부당한 인종차별을 받고 있다는 취지의 항변이다.

해리스 대사는 왜 민감한 문제인 인종차별 논란을 먼저 꺼냈을까? 태평양사령관 시절 중국한테서 ``‘반은 일본인’이란 비난에 줄곧 시달린 그는, 한국에서 다시 나온 ``‘일본계’란 지적에 민감했을 수 있다.

주권침해 논란을 덮으려는 고도로 계산된 국면 전환용 발언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와 함께 군 복무를 했던 사람들은 ‘해리스가 솔직하고 거친 발언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자신이 언제 치고 나가야 하는지 조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계산에 매우 능한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해리스 대사는 주권침해, 내정간섭 논란을 콧수염, 인종차별으로 돌리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의 기자간담회 이후 외신들도 ``‘해리스 대사를 일본계라 비판하는 건 인종차별’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방송 은 1월17일(현지시각) “해리스 대사는 일본인이 아니고 미국 시민이며 그를 일본 혈통으로 부르는 것은 미국에서는 거의 인종차별로 간주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은 인종적 다양성이 없는 동질적인(homogenous) 사회”라며 “외국인 혐오는 놀라울 정도로 흔하다”고 전 했다.

`‘일본인 어머니와 콧수염’ 때문에 비난받는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가 스스로 일본계란 말을 하기 전에 그 사실을 모르는 한국 사람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총독들이 콧수염을 길렀는지에 관심 갖는 이도 거의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일부가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을 조롱하고 일본계 혈통을 문제 삼았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이에 관심이 없다. 콧수염과 일본인 어머니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건 해리스 대사 혼자만의 생각이다.

해리스 대사는 1월16일 혈통과 콧수염 문제를 꺼낸 간담회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낙관주의는 고무적이지만 (중략) 그 낙관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는 미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사 부임 이후 1년6개월 동안 주권침해 발언을 계속했다. 올해 언론 인터뷰에서는 호르무즈해협에 한국군 파병을 공개 요청했다. 지난해 11월엔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의원을 자신의 관저로 불러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으로 50억달러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20번가량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여야 의원들을 만나 “문 대통령이 ‘종북’ 좌파에 둘러싸였다는 보도가 있다”고도 말했다.

고압적 태도로 논란 키워

문제는 콧수염과 혈통이 아니라, 한국을 주권국가로 존중하지 않는 해리스 대사의 고압적 태도다. 그의 태도는 한-미 관계 변화 흐름과도 맞지 않다. 해리스 대사를 포함해 지금까지 주한 미국대사 23명 중 17명이 직업외교관이었다. 비외교관 6명은 교수, 한국에 익숙한 중앙정보국(CIA) 출신, 정치인 등이었다. 장군 출신 직업군인은 해리스 대사가 처음이다.

해리스 대사가 한국에 부임하기 전 미국에서 논란이 있었다. 이미 한국에 현역 미 육군 대장(주한미군사령관)이 있는데 해군 4성 장군 출신을 대사로 보내면 마찰이 있을 거라는 지적이었다.

해방 이후 부임한 역대 주한 미국대사들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1980년대까지는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았다. 이들은 한국 장관은 물론이고 대통령도 필요할 때 수시로 만났다. 4·19 혁명 때는 월터 매카너기 대사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사퇴를 요구해, 이 대통령의 하야 의사를 받아냈다.

1966년 3월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한국군 베트남 추가 파병에 미국의 보상을 담은 ‘브라운 각서’를 전달했다. 1973년 박정희 정권이 당시 야당 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일본에서 납치해 살해하려고 하자, 필립 하비브 대사가 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살렸다. 1987년 6월 항쟁 때 제임스 릴리 대사는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계엄령 선포 등 시위 무력 진압 계획을 막았다.

협상이 싸움이 되는 이유

1990년대 이후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한국 국력이 커져 한-미 관계가 바뀌고, 북한 핵문제가 불거졌다.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변했다. 대부분 직업외교관 출신이 와서 북핵 문제를 다뤘다. 소고기 수입 등 양국 통상 현안을 조정하는 데 애썼다. 한국 내정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막후 실세’란 주한 미국대사의 기억이 차츰 희미해졌다. 한국 사람들이 해리스 대사의 언행을 보며 시곗바늘이 거꾸로 도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다.

외교와 협상에서 뛰어난 고전으로 평가받는 <파리 최고의 협상가 켈리에>를 쓴 17세기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드 켈리에는 강대국 협상가(외교관)일수록 부드러워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협상가는 말과 행동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즉, 말과 몸가짐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있어서는 안 되며,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강대국 협상가일수록 오히려 부드러워야 합니다. 나라의 힘만 믿고 함부로 날뛰거나 자기 생각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 순간 협상은 토의의 자리가 아닌 싸움의 자리가 되고 맙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20-01-31 한겨레21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