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과정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갓난아기부터 100살 할아버지까지 국민 3만2천명이 마음과 뜻을 모아 설립한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국민 참여 재단입니다.
1995년 5월 독지가 고 김철호선생이 현금 5억 원과 토지 1만2천여 평을 한겨레신문에 기탁하면서 ‘뼈에는 색깔이 없다’는 말로 우리 민족 내부에 골 깊은 이념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통일을 위해 힘써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그 소중한 뜻을 받들어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통일재단을 설립키로 하고 광복 50돌을 맞는 1995년 8월에 재단설립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1995년 10월에는 사회 각계원로 23명이 모여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설립을 발의하고 발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이듬해인 1996년 1월부터는 한겨레신문사 지면을 통해 본격적인 발기인과 후원금 모집 캠페인을 벌였는데, 3만2천여 명의 국민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5억여 원의 기금이 모였습니다. 1996년 7월 마침내 국민 3만 2천명의 이름으로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설립 발기인 총회를 열었습니다.

고 김철호 선생

1924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고 김철호 선생은 해방 뒤부터 섬유, 화학약품 제조업체를 경영하며, 당시로는 획기적인 사원 공채를 실시하는 등 우리의 기업문화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1982년 자신의 농장 일부를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휴양소로 써달라며 노동부에 기증하셨고, 현재 그곳엔 산재 노동자들을 위한 요양소가 세워져 있습니다. 특히 1994년 고 김철호 선생은 분단 이후 민족갈등으로 숨진 사람들의 진혼, 위령사업에 써달라며 서중석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를 통해 현금 5억 원과 전남 구례의 토지 1만2천여 평 등 7억여 원을 한겨레신문사에 기탁하셨고, 오늘날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의 주춧돌을 마련했습니다. 생전에 투병 중에서도 ‘외국에서는 살아서 원수로 싸웠더라도 죽은 다음에는 같은 민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상례입니다. 통일에 앞서 남쪽에서부터라도 죽은 자와 산자가 서로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고 김철호 선생은 안타깝게도 1995년 지병인 간암으로 타계하셨습니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고 김철호 선생의 유언과 뜻을 받들어 분단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전남 구례에 ‘지리산 한겨레평화생명공원’을 건립하고 있습니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의 발의자들(가나다 순)

*발의 당시 직위 기준
김관석(전 기독교 방송 사장) 김선(대한변협 회장) 김수환(추기경)
김용준(고려대 명예교수) 김정한(민족문학작가회의 명예회장) 서영훈(한국시민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손기정(육상연맹 고문) 송월주(전 조계종 총무원장) 안성기(영화배우)
유창순(전 국무총리) 이세중(전 대한변협 회장) 이수성(전 국무총리)
이태영(가정법률상담소 이사장) 이회창(전 국무총리) 임권택(영화감독)
장기려(전 인제대부속병원장) 조남철(한국기원 명예이사장) 조순(전 서울시장)
조아라(광주기독청년회 명예회장) 최태섭(한국유리 명예회장) 한완상(전 한국방송대 총장)
허웅(한글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