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인도적 대북 지원, 정부 독점 말고 민관협력기구서 논의해야”

작성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작성일
2018-01-18 21:06
조회
428


?

북민협 법률 소위원회 고경빈 위원장

북한 지원 56개 단체로 꾸린 ‘북민협’
소위 구성해 8월부터 대북지원 법률안 제정
전직 통일부 고위 관료 출신으로 위원장 맡아서
‘남북한간의 인도지원과 개발협력 법률안’ 만들어

“인도적 지원을 정부 혼자서가 아니라
객관성·전문성 갖춘 이들이 참여하는
민관협력기구에서 결정하는 게 핵심”

현재는 인도지원이 대북인권법에
왜소한 형태로 규정…부정상적인 상황

“북한 인권과 대북지원을 한 틀에 넣는 것은
국방부와 통일부를 하나로 합치는 것과 같아”

고경빈 ‘북민협 대북지원 법률제정 소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 앞에서 ‘남북한 간의 인도지원과 개발협력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정 대북지원사업이 인도적 성격에 해당하는지 또 투명성은 확보되었는지 여부를 정부 혼자가 아닌 객관성과 전문성을 갖춘 분들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협력기구’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게 법안의 핵심 내용입니다.”

고경빈 ‘북민협 대북지원 법률제정 소위원장’은 지난 5일 완성한 ‘대북지원 법률안’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 위원장은 지난 8월부터 북한을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56개 단체로 구성된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의 법률 소위원회를 이끌어왔다. 북민협 회원단체 대표들과 김광길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 등 총 11명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는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차례의 내부 회의와 공청회 등을 거친 뒤 ‘대북지원 법률안’인 ‘남북한 간의 인도지원과 개발협력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다.

북민협은 현 정부 출범에 앞서 2013년 1월16일 ‘인도적 대북지원에 관한 사회 협약’을 제안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인도적 대북지원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북민협은 지난 9월4일 ‘북한인권법’이 발효되면서 인도지원 입법화를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북한 인권 개선’을 목표로 한 북한인권법에는 인도지원과 관련된 조항이 왜소해진 상태로 언급돼 있다. 북민협은 이렇게 대북 인도지원이 북한인권법에 ‘곁방살이’하는 것은 문제라고 봤다. 고 위원장은 이에 대해 “북한을 상대하려면 통일부와 국방부가 다 필요한데, 인권법에 대북지원을 함께 다루는 것은 마치 두 개의 부처를 하나로 합치는 것과 같아 자중지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비판한다. 고 위원장을 지난 5일 소위원회 마지막 회의가 열린 서울 마포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에서 만나 ‘인도지원과 개발협력에 관한 법률안’의 내용과 의의에 대해 들어봤다.

고 위원장은 2009년 6월 통일부에서 명예퇴직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사회문화교류국장, 개성공단 지원단장, 하나원 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에는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인도지원에 관한 법률이 왜 필요하다고 보는가?

“인도지원 문제는 어떠한 경우든 정치적 고려를 떠나서 추진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상황을 보면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판단을 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다. 법률안의 핵심 취지는 인도지원 문제를 정부가 혼자 판단하지 말고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객관적 입장에 서는 민관협력기구에서 논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판단을 정부가 독점하면서 나타나는 폐해는 무엇인가?

“정부의 판단 독점은 인도적 지원 문제를 정치상황에 따라 좌우되게 만든다. 더욱이 이로 인해 인도적 지원 문제가 남남갈등에 휘말리게 된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문제는 현재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과거 대북지원이 활발하게 추진되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투명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이에 대한 판단을 정부 혼자서 했다. 더욱이 최근 대북지원이 중단된 이후에는 인도적 지원 필요성이 제기되어도 이에 대한 판단을 정부 혼자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서 대북지원과 관련된 남남갈등에 통일부가 직접 당사자의 하나가 되어 얽혀듦으로써 신뢰를 받기가 어려워졌던 측면이 있다. 인도주의 원칙은 이러한 남남갈등 속에서 실종되거나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다.”

-19대 국회 때도 정의화 의장 등에 의해 몇차례 인도적 지원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가 폐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현시점에서 다시 법안을 발의하려 하는 것인가?

“북한인권법이 지난 9월4일 발효된 것이 영향을 주었다. 북한인권법 발효로 인도적 대북지원이 ‘북한인권법’의 규정을 받게 됐다. 이렇게 한 틀 안에 성격이 다른 문제를 묶어 놓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엔에서 인권규약을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으로 나누고 있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역사적 배경과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합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는 문제는 A규약과 관련된 문제이며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B규약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렇게 다른 내용을 한 법률로 다루면 두 가지 목표 모두 효과적으로 추진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현재 정부가 대북 관계에서 인도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고 보는가?

“인도주의 원칙에서 볼 때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인도주의적 문제를 정치적 고려 없이 추진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 활동은 전면 중단돼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말~9월 초 북한 함경북도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에 대한 민간단체들의 긴급수해지원에 대해서도 지원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통일부는 9월 초 수해 지원 협의를 위한 북민협의 북한주민접촉신고에 대해 ‘수리거부’를 통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이나 기타 현안과 연계하지 말고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은 역대 정부가 유지해 왔고 현 정부도 대북정책의 원칙으로 천명한 것이다. 인도지원 문제는 북핵 문제로 인해 결의된 유엔의 대북제재에서도 허용하고 있는 문명국의 보편원칙이다.”

-전직 통일부 사회문화교류국장, 정책홍보본부장을 역임한 입장에서 법률제정 소위원장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스럽지 않았나?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이 법안이 통일부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불필요하게 국내정치적 정쟁이나 남남갈등에 연루돼 힘들어하는 부분들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게 됐다. 과거에도 대북지원이나 남북교류가 활발히 추진되었을 때 각각의 사업들에 대한 사업평가나 투명성 판단을 공무원 몇 명이 하는 것보다는 별도의 전문기관이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법안에는 그런 아이디어도 담겨 있다. ‘남북인도협력추진단’이라는 기구가 그것이다. 이 기구가 설립되면 통일부의 정치적 부담은 덜어지고 실무적 역량은 크게 늘 것으로 기대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 등 대북인도지원활동이 시작된 1990년대와 비교할 때 북한이 많이 달라졌다. 인도적 지원도 당시와 비교할 때는 성격이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예전 방식으로 갈수도 없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남북한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민간차원의 교류나 인도적 분야에서의 협력은 평화통일의 길을 다시 열기 위해 포기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주요한 정책수단이다. 물론 북한의 사정이 과거 극심한 기아상태를 벗어났고 최근의 남북 대결 국면 속에서 서로 적대감과 배신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인도지원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고 본다. 한 예로 북한에서 시장적 요소가 늘어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함께 소외받는 계층이 생겨나고 있다. 또 앞으로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상호 나눔의 정신에서 남북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 방식의 인도협력사업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우리 국민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나 민족적 포용성을 다시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러나 남북한에서 공동체 정신이나 통일 의지가 약화되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인도적 지원이 안 돼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인도적 지원이 정상화된다고 해서 통일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질지는 의문이다.

“남북의 민족 공동체 정신을 높이는 문제를 이 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나 민족적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의 정상화는 공동체 정신을 해결하는 많은 노력 중의 하나일 뿐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tree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