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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북 민간교류 산증인 강영식 전 ‘우리민족’ 사무총장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09-18 14:44
조회
31


“두번째 이름이었던 ‘강 총장’을 떼어버리려니 문득문득 나의 정체성과 남은 인생의 길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대표적인 대북 인도지원 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우리민족)의 강영식 전 사무총장(사진)이 지난 2일 이임식을 하고 23년간 몸담았던 우리민족을 떠났다. 그는 1996년 경실련 사무국장을 하다 우리민족 활동을 시작해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교류에 앞장서 왔다. 2008년 2월부터 사무총장을 맡아 우리민족의 살림을 꾸려왔다. 그는 150여차례 방북하는 등 ‘남북교류협력 현장의 산증인’이다. 스스로도 “방북 횟수로 치면 국내에서 열 손가락에 든다”고 말한다. 남북에 쌓은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의 대북교류협력사업에도 힘을 보태왔다.

지난 10일 오랫동안 이름처럼 불리던 ‘강 총장’을 뗀 소회를 물었더니, 뜻밖에도 “별로 없다”고 답했다. 우리민족 누리집에는 ‘23년의 청춘을 함께 보낸 우리민족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그의 이임 인사가 올라와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숱한 어려움에도 우리가 앞장섰던 인도적 대북지원 운동이라는 새로운 길이 이제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고 대립과 갈등뿐이었던 민족에게 화해와 평화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며 소회를 밝혔다. 그는 “남북 민간교류가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있으며 많은 성취를 이루었으나 남북관계의 본질적 핵심적 의제가 아니었고, 제도화 같은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23년 활동을 성찰하고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답답하게 눌어붙은 남북관계가 인터뷰에선 이임 소회를 밝히는 것도 조심스럽게 만든 것이다.

교착된 남북관계 해법을 물었다. 강 전 총장은 지난해 이맘때(9월19일) 평양 시민 15만명 앞에서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감동적 연설보다는 2017년 12월19일 강릉행 고속열차(KTX)에서의 문 대통령의 간결하지만 단호한 메시지를 먼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반도의 극적인 평화프로세스가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시작되었지만 사실은 2017년 12월19일 문 대통령이 고속열차에서 한 미국 방송과 했던 인터뷰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한-미 군사연습의 연기를 제안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당시 11월29일 북이 로켓을 발사한 이후 12월21일 유엔 제재 결의안 통과가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 그 시점을 놓쳤으면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선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는 “남-북-미 3자간 힘 관계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의 변화와 주도성을 통해 상황을 돌파하려는 능동적 자세가 다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북관계의 어려움을 돌파하려면 정부가 주도적이고 과감한 정책 변화를 취하면서 동시에 시민사회가 역동적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정부에 강하게 촉구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남북관계 상징의 하나였던 ‘인도적 대북지원’이란 패러다임은 이제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종언을 고했다고 봤다. ‘인도지원’을 받아들일 북쪽의 뜻이 매우 약해진 상황에서 예전처럼 동포애와 인도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잘사는’ 남한이 지원하고 ‘못사는’ 북한이 이를 수용하는 일방적인 대북지원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대북지원 활동은 남북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 이를 통해 평화공존을 증대시키는 포괄적 평화 측면에서 계획되고 실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강 전 총장은 남북 간 교류협력의 제도화를 위한 구체적인 협력방식으로 남북 간 공동의 개발협력기구들을 설립·운영하자고 제안했다. 남북 공동의 감염병 공동관리기구를 만들고, 가칭 ‘코리아 아동기금’(Korea Children’s Fund: Korcef·코르세프)을 남북 공동으로 설립, 운영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평양 공동선언 합의대로 “자연 생태계의 보호 및 복원을 위한 남북 환경협력을 적극 추진”하자면 ‘한반도 산림녹화기구’와 같은 공동 협력기구 설립·운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남북 당국은 이 기구들의 운영과 활동, 상호 간의 상주 인원 등을 자국 내 법으로 보장하고 제도화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강 총장’을 떼고, 북한 개발협력사업이란 새 과제를 모색하고 있다.

글·사진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2019-09-15 한겨레신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