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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18일은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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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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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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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0월31일 오후 금강산관광 사업자인 현대아산 배국환 사장과 한국관광공사 안영배 사장을 만나 금강산관광 문제를 협의했다. 이날 면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금강산 내 남쪽 시설 철거 지시와 관련해 금강산관광 사업자의 의견을 듣고 정부의 향후 대응 방향 등을 공유하기 위해 통일부가 요청해 마련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금강산관광은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 사업”이라며 “현 상황에서 사업자 쪽 입장이 금강산관광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강산관광이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 사업이지만, 평화사업이기도 하다. 복잡한 남북관계 현안의 핵심을 알기 쉬운 말로 정리하는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금강산관광은 햇볕정책의 옥동자”라고 비유했다.


1998년 11월18일 오후 5시44분, 강원 동해항에서 관광객 등 1400여 명이 탄 유람선 ‘현대 금강호’가 북한 강원도 고성군 장전항으로 출발했다. 금강호는 11월19일 새벽 2시50분에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이날 새벽 6시 금강산의 관문인 장전항에 도착했다. 21년 전 금강산관광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반도 군사 긴장 누그러뜨렸던 금강산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금강호가 출항하고 며칠 뒤인 11월22일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텔레비전을 보니까 금강호와 한국 사람들의 축제 분위기가 감동적이었다. 평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 말은 당시 팽팽했던 한반도 군사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1998년 8월31일 북한이 일본 상공을 지나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 등으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다.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퍼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불안해했고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불과 1년 전 1997년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 처지에선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게 시급했다. 당시 서울을 찾은 클린턴 대통령의 “평화의 가능성을 봤다”는 발언이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에 큰 도움이 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자서전 <나의 인생>(My Life)에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나는 11월 일본과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위기 극복 노력과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다만 우리 두 사람이 미사일이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한 우려에 공감했다. 나는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에게 우리의 한반도 정책을 재검토한 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한국과 화해하도록 할 수 있는 로드맵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금강산관광은 안보에도 기여했다. 장전항은 활 시위에 화살을 놓고 길게 당기는 지형이다. 장전항에는 잠수정 등 동해 쪽 최남단 북한 해군 기지가 있었다. 금강산관광이 본격화돼 장전항이 개방되자 북한은 해군 기지를 장전항 북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개성공단이 들어서자 애초 개성공단 터에 주둔했던 북한군 장사정포 부대 등이 북쪽으로 올라간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벽에 부딪친 창의적 해법


10월29일 북한은 실무회담에서 금강산관광 문제를 논의하자는 남쪽 제안을 ‘별도의 실무회담을 가질 필요 없이 문서 교환 방식으로 합의하자’며 하루 만에 거절했다. 금강산 남쪽 시설 철거 위기를 대화의 기회로 삼아 ‘창의적 해법’을 찾겠다는 정부 구상이 벽에 부딪쳤다.


정부가 구상하는 창의적 해법의 뼈대는 ‘개별 관광+이산 상봉+사회문화 교류’ 방식이다. 세 방식의 효과적인 배합으로 국제 제재를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관광사업 재개와 활성화 효과를 얻자는 구상이다.


정부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현대아산이 관광객을 모집하던 기존 단체관광 방식을 다시 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아산은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아서 한 달 뒤 한꺼번에 북쪽에 관광 대가를 정산했다. 이 방식은 유엔 제재 대상인 이른바 ‘벌크 캐시’(대량파괴무기 개발에 쓰일 위험이 있는 대량 현금)에 해당한다. 정부는 관광 대가를 개별 지급하는 ‘개별 관광’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등을 활용한 이산가족 상봉과 각종 남북 행사 금강산 개최 같은 사회문화 교류 활성화도 창의적 해법으로 생각하고 있다. 금강산에서 각종 남북 행사를 할 경우 참가자들이 금강산 구경을 할 수 있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되는 것처럼, 형식이 어떻든 금강산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지면 내용상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는 것이다.


북한의 실무회담 거부는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막힌 남북관계가 근본 원인이다. 남쪽의 창의적 해법 구상에 대해 북쪽의 무관심이나 부정적 태도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창의적 해법 제안을 위해서는, 금강산 사업을 넘어 남북관계, 북-미 관계 등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정리가 먼저 있어야 한다.


“북, 중국인 관광객 접근성 높이겠다는 의도”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10월29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김정은 위원장의 금강산 내 남쪽 시설 철거 지시에 대해 “(미국과 북한 중) 어느 쪽으로 베팅을 할 것이냐의 문제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북한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자세가 ‘미국을 설득시킨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지 않으면 금강산 문제를 갖고 실무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금강산관광 재개와 시설 재개발 쪽으로 방향을 잡고 미국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금강산 개별 관광과 관련해 “대량 현금이 들어간다든지 중장비가 들어가서 무엇을 고친다면 제재에 해당한다”며 “중국 관광 회사를 통해 개인적으로 가는 것은 제재 문제가 아닌 정부 허가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북한은 모든 자원을 다 사용하며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우리가 실무적 차원에서 ‘불만이 있으면 이야기 좀 해봐’ 식으로는 (대화가) 안 된다”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북-미 실무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고 김정은 위원장은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백두산 등정길에 삼지연을 현지 지도하면서 강조한 것은 자력 부강, 자력 번영이었다.


백두산 방문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을 찾아, 더는 남한에 의존하는 방식의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은 금강산 지구 시설 철거를 요구하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이 앞으로 금강산관광지구의 남쪽 시설을 철거한 후 삼지연군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서처럼 현대적이고 세련된 관광시설을 건설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성장 본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인접 군에 관광비행장까지 건설하라고 지시한 것은 중국인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관광에서 출구 찾으려는 북


국제 제재로 수출 길이 막힌 북한은 관광산업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한다. 북한이 독자적으로 금강산을 개발하고 운영한다면 기존처럼 남쪽 관광객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중국 관광객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기대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지난해 이후 북한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주석 방북 당시 관광객 200만 명을 북한에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중국인 관광객 200만 명이 1인당 1천달러쯤 북한에서 사용하면 20억달러 규모다. 이 돈은 북한이 자력갱생을 하는 데 버팀목이 될 수 있다.


금강산에는 ‘천하절승 금강산’이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북한이 금강산을 독자 개발하면 세계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을까?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장을 지낸 심상진 경기대 교수는 “현대아산에서도 외국 손님들을 모셔가려 했는데 최대치가 (전체 금강산 관광객의) 5%”라며 “북쪽이 싱가포르와 홍콩도 가보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를 통해서도 해봤는데 누구도 현대가 빠진 금강산에 가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강산이 명산인 것은 우리 민족끼리 이야기고, 중국인 관광객이 볼 때는 자국에 장자제(장가계), 황산 등 관광지가 많은데 얼마나 올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아산이 금강산관광을 했던 10년 동안 모두 193만 명이 금강산을 찾았다. 193만 명 중 외국인은 1만2천 명이었다. 금강산을 찾은 외국인 중 대부분은 국내 거주자였다. 남쪽 관광객 없이 금강산관광이 잘될지는 불투명하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남쪽에 의존하는 금강산관광 사업 방식을 비판하면서도 남쪽 주민들은 환영한다는 표현을 남겨 남북협력 여지는 남겨두었다. 이는 남북협력을 통해서라야 사업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금강산 사업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자, 남쪽의 전향적 입장 전환을 요구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핑퐁게임 말고 특사 방북 등 물밑 접촉을”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범국민운동본부는 10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당장 선언하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대북제재’ ‘무능한 통일부’ ‘미국 눈치 보기’가 금강산관광 재개를 막는 걸림돌이라며, 이들 문구가 적힌 띠를 금강산 사진 앞에 두르고 가위로 잘랐다.


정부가 남북관계 독자성 확보에 적극 나서라는 요구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냉랭한 남북관계가 계속 갈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는 다시 실무회담을 제안하며 북한과 핑퐁게임을 할 게 아니라 특사 방북 등으로 물밑 접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19-11-03 한겨레21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