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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흡수통일하지 않았다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12-03 10:17
조회
7


 

1989년 11월9일 독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10월3일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아주 많다. 올해가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라 11월9일을 전후로 열린 학술행사, 언론 보도에서도 독일 흡수통일 주장을 비중 있게 다뤘다.

 

독일 통일에 운 동양인은 한국 사람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가 통일 이후 독일이 이룬 것과 잃은 것을 정치·문화·사회·경제 분야로 나눠 11월과 12월 초 매주 월요일 다섯 차례 토론회를 열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이 쏟아졌다.

11월11일 두 번째 토론회에서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는 “한국 사람이 독일 통일에 관심이 많다”며 독일 유학 시절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다음날의 경험을 들려줬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 붕괴 전에 학교에 가면 한국 사람, 중국 사람, 일본 사람 등 동양인 구별이 잘 안 됐다. 베를린장벽 붕괴 다음날 학교에 가니 금세 구별이 가능했다. 밤새 운 동양인은 우리뿐이라 한국인은 다들 눈매가 촉촉했다. 당시 베를린장벽 붕괴는 세계사적 사건을 넘어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지’라는 한국인 마음을 건드린 정서적 사건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사람이 독일인보다 독일 통일에 관심이 많다.”

김누리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독일 통일에 관심이 많지만 잘못 알고 있는 지식도 많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김 교수는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는 인식을 들었다. 그는 독일에서는 ‘흡수통일’이란 말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통일을 설명할 때 흡수가 아니라 ‘가입’ ‘결합’ 등의 개념을 쓴다. 김 교수는 “마치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인상을 주는 흡수통일은 사실관계에 비춰볼 때 100%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독일 통일 과정을 보면, 동독은 흡수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주역이었다.

11월11일 토론회에 참석한 김면회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외교학)도 “동독 내 자생적인 움직임이 독일 통일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독일 통일은 국제 환경과 동독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동독 주민들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선택한 결과물이었다”고 설명했다.

2015년 독일 통일 25주년 기념사에서 당시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통일은 평화혁명에서 생겨났습니다. 동독인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강력한 민중운동을 통해 억압자들에게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라고 밝혔다.

평화혁명은 1989년 12월9일 동독 지역 라이프치히 주민 7만 명이 거리로 나오면서 시작됐다. 당시 동독 정권의 유혈 진압, 발포 협박에도 라이프치히 주민들은 거리시위를 벌였고 동독인들은 에리히 호네커라는 스탈린주의 권력자를 권좌에서 몰아냈다. 민중이 독재자를 피 흘리지 않고 몰아낸 평화혁명이고 동독인이 이룬 동독혁명이었다. 1990년 3월 동독 인민의회(국회의원) 선거에서 ‘빠른 통일’을 공약으로 내건 정당이 압승을 거뒀고, 그해 10월 독일은 통일을 이뤘다.

 

미디어 쥔 서독 출신이 동독 사정 다루지 않아

안성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문제는 통일 이후 과정”이라고 말했다. 독일 통일 과정은 동독 5개 주가 서독 연방에 가입하는 형식을 밟았다. 김누리 교수는 “동독이 서독 연방에 가입하려면 서독 기준을 일방적으로 따라야 했다. 서독 기준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동독 사람 개인의 이력이 부정됐다. 자신의 모든 존재와 자신이 살았던 거대한 세계 전체가 부정된 꼴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독일 작가 마이케 네도는 통일 당시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공부하던 19살 대학생이었다. 네도는 동독인이 통일 이후 2등 시민이라고 느끼는 것은 구체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일 뒤 1990년대 동독 사람들은 환희와 새로운 출발에 대한 희망에 차 있었다. 내가 있던 라이프치히는 역사가 수백 년 된 출판사들이 있는 등 출판문화의 전통이 깊었다. 통일 이후 동독 출판업계 고용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고 출판업계에서 일하던 상당수가 실업자가 됐다. 하지만 언론 등 공론장에서 이런 동독 사람들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은 것은 미디어업계 주요 직책을 서독 출신이 맡은 것도 한 원인이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1990년대 이후 독일 통일을 포함한 동유럽 체제 이행 30년과 관련해 “유럽이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동유럽 체제 전환이 진정한 자유와 삶의 질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체제 이행의 후유증으로 폴란드, 헝가리, 체코, 세르비아, 마케도니아에서는 정치가 권위주의로 돌아가고,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으로 인한 빈곤과 불평등 체제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확산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김주호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연구전담교수는 2013년 창당한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이 옛 동독 지역에서 지지율이 오른 것에 주목했다. 이 정당은 반이민·반난민 등 극우, 극단적 민족주의 주장을 펴고 있다. 김주호 교수는 “외국인 혐오, 반이민·반난민 정서의 바탕에는 통일 이후 동서 격차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누리 교수는 “통일 이후 동·서독 간 사회문화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상태에서 남북 통일이 되면 동·서독 갈등은 비교가 안 될 것이다. 남한 사람은 북한 사람을 2등 국민이 아니라 7등 국민 정도로 취급할 것이다. 지금 상황을 적용하면 지옥에 가까운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북한을 비정상으로 보는 오만 버려야

김누리 교수는 ‘통일은 신중히, 분단체제 해소는 신속히’란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남한이 잘못된 인식을 깨지 않으면 통일되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볼 때 북한 사람이 정말 이상하다. 북한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북한 사람 모습의 절반은 연출된 것이라고 설명하더라. 북한 사람도 연출된 것을 안다고 한다. 남한 사람은 북한 사람보다 더 이상하다. 그걸 남한 사람은 모른다. 우리는 ‘경쟁해야 잘 산다’거나 ‘소비해야 잘 산다’고 믿는다. 남한 사람은 이를 북한처럼 연출이 아니라 스스로 신념화했다.” 우리가 먼저 변화해야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남한을 정상으로 북한을 비정상으로 보는 오만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접근을 통한 변화’란 동방정책이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았다. 지금 남한이 취할 가장 핵심적인 태도는 동방정책을 거꾸로 뒤집어 ‘변화를 통한 접근’이란 게 김누리 교수의 당부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19-11-19 한겨레21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