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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비정상 북한 바꿔야? 통일은 남북 상호 변화서 시작”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12-09 14:04
조회
84


“남북이 상호 변화의 관점에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가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통일 이후 독일이 이룬 것과 잃은 것을 놓고 11·12월 다섯차례 개최한 토론회에서 모아진 의견이다. 1989년 11월9일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10월3일 독일이 통일됐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종합토론에서는 독일 통일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중심으로 논의됐다. 앞서 지난달에는 정치·문화·사회·경제 분야로 나눠 4차례 토론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남한은 정상이고 북한은 비정상으로 전제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남북 두 체제가 각각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의 변화가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는 “남한이 비정상 사회인 북한을 가르쳐서 우리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봉건적인 사회주의(북한)의 민주화, 약탈적 자본주의의 인간화(남한)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펼치고 있는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도 “남북이 상호 변화해야 한다. 남한 사회는 너무 일방적인 통일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 사회를 동정의 대상이나 계도의 대상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독일에 견줘 한국이 통일 준비가 덜 되고 통일에 대한 열의도 식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남한 내부의 정치 민주화, 발전이 필요하고 북한 내부의 정책적 변화나 발전도 필요하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독일 통일 뒤처럼 기대하지 않던 결과와 마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이 통합을 넘어 남북의 주민들이 서로 배타적으로 되지 않고 공존할 수 있게 사회정치제도, 경제 시스템, 고용, 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동독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 후유증으로 독일 내 극우 정치의 대두가 꼽힌다. 구체적으로 2013년 창당한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이 옛 동독 지역에서 지지율이 높다. 이 정당은 외국인 혐오, 반이민·반난민 주장을 펴고 있다. 김주호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연구전담교수는 “이런 주장이 동독에서 호응을 얻는 바탕에는 통일 이후 동서 격차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성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도 “독일 통일 이후 체제변화 과정에서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던 이들이 자신을 더 잘 대변할 수 있는 극우 정당에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통일 이후 독일 경제는 한때 마이너스 성장을 겪었으나 위기를 잘 넘기고 순항 중이다. 하지만 통일 이후 국가 경제를 재건, 부흥하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불평등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는 통일 이후 노동시간 증가, 임금 정체·격차를 예로 들며 “독일이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하는 자신의 이념에 충실해 ‘사람 중심’의 동서독 통합 과정을 주도하지 않고 시장 중심, 기업 중심으로 진행했다. 이것이 격차를 심화시켰고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종합토론 좌장을 맡은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은 독일 통일 이후 나타나는 여러 갈등과 문제에 대해 △통일 방식의 문제인가 △정책적 실책인가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통일이 불평등을 야기했는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지 등을 데이터에 근거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신광영 교수는 동서독 통일 이후의 사회문제는 동유럽 체제 전환 이후의 사회문제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뒤 90년대 이후 체제 전환을 경험한 동유럽도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투아니아는 불평등 심화로 전체 인구의 20%가 이민을 가는 등 사회 해체로 나갔다. 반면 슬로베니아는 불평등이 낮고 소득 수준은 크게 높지 않으나 사회가 안정돼 있다. 신 교수는 “통일은 정치적 차원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통합적인 차원에서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이 통일을 이루었듯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의문도 나왔다. 안성찬 교수는 “남북한이 독일만큼의 통일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 남한 내에서도 갈등 통합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통일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어느 날 체제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 이전 통일 개념에서부터 서로에게 다가가는 사회문화적 균질화, 균등화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는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통일 독일에서조차도 동독 지역에서 정치적, 문화적 이탈이 일어났다”며 “통일과 통합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선 변혁, 후 통일’론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남북이 단일한 생각과 가치를 갖는 게 중요한가, 현실적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에 대한 현실적이고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북이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질적으로 협력 관계를 심화해가고 나아가 국가연합의 전 단계로 가는 과정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열린 4차례 토론회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도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누리 교수는 “대표적인 오해가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는 주장이다. 사실관계에 비춰볼 때 100% 잘못된 인식이다. 독일 통일 과정을 보면, 동독은 흡수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주역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동독 정권의 유혈 진압, 발포 협박에도 1989년 12월9일 동독 지역인 라이프치히 주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시위를 벌였고, 권력자 에리히 호네커를 권좌에서 몰아냈다. 1990년 3월 동독 인민의회(국회의원) 선거에서 ‘빠른 통일’을 공약으로 내건 정당이 압승을 거뒀고, 그해 10월 독일은 통일을 이뤘다. 김면회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동독 내 자생적인 움직임이 독일 통일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독일 통일은 국제 환경과 동독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동독 주민들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선택한 결과물이었다”고 설명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정리 김지은 한겨레통일문화재단 간사 nura@hani.co.kr

2019-12-09 한겨레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