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NEWS

[김연철의 냉전의 추억]북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지

작성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작성일
2018-01-18 19:37
조회
232
[2009.03.27 한겨레21 제753호]

남북 외교에서 오간 말의 역사… 입을 풀기에 좋은 날씨 얘기, 불변의 진리 ‘욕설의 상승’

외교는 말로 한다. 말은 비수보다 날카로운 폭력이 되기도, 혹은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공감을 얻는 귀중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말이 거칠어지면 욕이 나온다. 그러다 말싸움이 되고, 종종 주먹다짐이 벌어진다. 남북관계처럼 전쟁을 겪었고, 대결이 남아 있으며, 신뢰가 약한 상대 사이의 말은 훨씬 조심스럽다. 일관성이 없는 말이나, 말뿐인 말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말싸움을 지나 이제는 주먹다짐으로 넘어가는 남북관계를 보며 지난 시절의 말들을 생각해본다.
‘네 이웃의 버릇을 고치려 들지 말라.’ 지난 2001년 11월 초 열린 제6차 장관급 회담에서 홍순영 당시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김령성 북쪽 단장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있다. 홍 장관은 당시 회담에서 실무합의를 뒤집고 차기 회담 날짜를 합의문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수를 두다가 결국 회담 자체가 결렬됐다. 공동사진기자단

날씨 선문답, 날씨에 뼈가 있다

남북 회담은 말로 한다. 총을 내려놓아야 말이 시작된다. 회담장에서의 말은 회담장 밖에서 확성기에 대고 고함을 치는 것과 다르다. 회담이 시작되면 가벼운 이야기로 입을 푼다. 날씨는 언제나 빼놓을 수 없다. 비가 오면 농사가 잘되기 바란다고 덕담을 하고, 눈이 오면 회담이 잘되기를 바라는 하늘의 축복이라고 예의를 갖춘다. 해가 나면 해가 나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어떠한 자연현상도 ‘비유’거리다.

물론 날씨 얘기에도 뼈가 있다. 2002년 10월20일 남북 장관급 회담 때다. 그날 평양의 날씨는 잔뜩 흐렸다. 당시 정세도 ‘매우 흐림’이었다.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의혹으로 2차 핵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김령성 북쪽 단장이 “바깥 날씨가 어떻든 우리 민족끼리 갈 길을 가자”고 말을 던졌다. 정세현 남쪽 대표는 이에 대해 “온도차가 심하면 감기 걸린다”는 말로 응수했다. 2004년 2월 장관급 회담 때도, 2차 6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직후였지만 정세는 불투명했다. 김령성 대표가 “겨울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봄은 오고야 만다”고 말했을 때, 정세현 장관은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왕소군의 고사를 인용했다.

2007년 2월 20차 장관급 회담 때, 북쪽의 권호웅 단장은 “겨울 추위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는 뼈가 시리다”고 했다. 북한과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초기 이행 조치’(2·13 합의)를 합의했는데도 여전히 인도적 지원에 소극적인 남쪽의 태도에 섭섭하다는 비유였다. 이에 대해 이재정 장관은 “봄에 녹은 것 같은 얼음도 잘못 밟으면 다친다”고 답했다. 북한의 이행 조치를 보고 대북 지원을 하겠다는 ‘날씨 선문답’이었다.

날씨 비유나 속담, 고사 등은 당시의 회담 전략을 고려해 신중하게 고른다. 남쪽은 주로 약속의 이행을 강조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혹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같은 속담, 그리고 “말을 하면 행동이 뒤따라야 하고, 행동을 하면 결과가 있어야 한다”(言卽行 行卽果)는 공자님 말씀을 즐겨 사용한다.
말의 뿌리에 걸려 낭패를 보는 일도 적지 않다.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거나 교착의 책임을 남쪽에 넘기려 할 때, 남쪽 당국자들의 발언을 문제 삼는다. 이때 북한은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영화의 유명한 대사처럼 ‘한 놈만 팬다’. ‘시범 케이스’를 골라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두 개의 전형적 사례가 있다. 하나는 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 사례다. 그는 <월간조선> 2000년 10월호에 평양 방문기를 실었다. 내용 중에는 평양에 살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자유가 없는 듯 보였다”거나, 이산가족들이 만날 때 남과 북의 살림살이가 차이난다는 부분이 포함됐다. 그해 11월3일 <평양방송>은 그의 발언을 “용납할 수 없는 도전이며 참을 수 없는 모독”이라고 비난하면서 “(앞으로) 상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적십자사 총재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럼 이산가족 상봉은 어떻게 되는가? 이후 장 총재 명의의 유감 서한을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해 11월 말 이산가족 교환방문 행사를 위해 서울에 온 장재언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장 총재에 대해 “죄에 죽고 올바르게 재생해야 한다”는 증오의 말들을 퍼부었다. 그때 장 총재는 서울에 없었다. 이산가족 행사 기간에 자리를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해야만 했다.

시범 케이스, ‘한 놈만 팬다’

당시 정부는 북한에 ‘저자세 외교’를 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들끓는 국민 여론을 고려해 12월15일 장관급 회담에서 박재규 장관은 ‘내정간섭적 발언’을 중지할 것을 북한에 요청했다. 그러나 전금진 북쪽 대표는 “남북 화해의 걸림돌은 제거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장충식 총재는 임기 5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12월23일 사임했다.

2001년 11월8일에 열린 6차 장관급 회담 대표였던 홍순영 장관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남북 회담도 ‘국제 기준’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 홍순영 장관의 소신이었다. 외교관다운 발상이었다. 문제는 때가 좋지 않았다.

6차 장관급 회담은 어렵게 열렸다. 북한은 9·11 테러 이후 남쪽에서 발령한 비상경계조치를 문제 삼았다. 회담 장소도 원래 평양이었으나, 북한은 금강산을 고집했다. 당시 금강산에 가려면 배를 타야 했고, 회담이 열리는 김정숙 휴게소의 전기 사정이 안 좋아 툭하면 정전이 됐다. 실제로 회담 기간 중 홍순영 장관이 목욕탕에서 샤워를 할 적에 정전이 되기도 했다. 통일부의 어느 국장이 그런 상황을 예상해 손전등을 준비하고 기다렸기에 난감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지난 2005년 9월19일 4차 6자회담 공동보도문에 합의한 직후 송민순 남쪽 수석대표(가운데)가 북-미 양쪽 수석대표들과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공동사진기자단

회담은 천신만고 끝에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과 7차 남북 장관급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그러나 홍순영 장관은 실무합의를 뒤집고 차기 회담 날짜를 명확하게 합의문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훈령은 “인내심을 갖고 합의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순영 장관은 “내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인데…”라며 훈령을 무시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제 환경이 악화되는 시점에서 남북관계의 지속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홍순영 장관은 북한의 행태를 뜯어고치고자 했다.

회담은 결렬됐다. 그러나 홍순영 장관은 보수 야당의 환영을 받았다. 보수 신문들도 일제히 “생떼를 쓰는 북한에 본때를 보여주었다”고 칭찬했다. 그는 국내 여론이라는 명분을 얻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실리를 잃었다. 9·11 테러 이후 네오콘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끈을 놓치지는 말아야 했다.

‘썰렁한 비유’와 ‘노골적 표현’

회담 이후 북한은 김대중 정부에 대한 모든 불만을 ‘홍순영 장관 비난’으로 쏟아부었다. 홍순영 장관도 국내 여론을 고려하면서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12월4일 영국 〈BBC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북한에게 더 이상 우방국이 없다. 북한은 과거보다 더 고립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12월19일엔 〈CNN방송〉에 나와 “똑똑하고 상황을 잘 파악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호전 세력에 흔들리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다. 회담 대표는 곧이어 정세현 장관으로 교체됐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추진했던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 외교관의 언어 구사에 대해 ‘썰렁한 비유’와 ‘노골적 표현’이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1993년 6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만류하는 미국에 대해 당시 북한 쪽 협상대표였던 강석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대사 한 구절을 영어로 인용했다. “개들은 짖지만 마차는 달린다.”(The dogs bark, but the caravan moves on) 미국이 뭐라 해도 북한은 자기 길을 가겠다는 뜻이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하는 6자회담에서 속담이나 비유는 넘어야 할 장애 중 하나다. 2005년 9월19일 4차 6자회담 공동보도문이 발표됐을 때, 김계관 북쪽 대표는 “미국은 지금 쫓겨가는 며느리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협상에서 미국이 패배했다는 뜻이었다. 크리스토퍼 힐 미 대표는 그게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했고, 송민순 남쪽 대표는 고부간의 갈등을 의미하는 그 표현을 어떻게 통역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욕은 통역하기 더 어렵다. 욕이야말로 그 나라의 언어습관을 반영한다. 욕은 하다 보면 점점 거칠어진다. 조지 부시 행정부와 북한이 주고받은 욕설의 상승 과정도 그랬다. 2001년 10월 부시 대통령은 “대화를 거부하는 김정일 정권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때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은 “제 코도 못 씻는 주제에 남을 넘겨다보는 가소로운 처사”라고 비난했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폭군’ ‘인민을 굶겨 죽이는 지도자’로 표현하는 등 욕설의 수위를 높이자, 북한의 욕설도 더욱 거칠어졌다. 부시 대통령 앞에는 ‘지각이 없고 무식하며 초보적인 외교 예의도 지킬 줄 모르고 외교적 수완이 없는 무능하고 무례한’이라는 긴 형용사가 붙었다. 부시 대통령 임기 동안 북한이 그에게 사용한 욕설은 ‘불망나니’ ‘도덕적 미숙아’ ‘세계 최악의 파쇼 독재자’ ‘특등 전쟁 미치광이’ ‘히틀러 2세’ 등 현존하는 악담 중 최고로 기분 나쁜 것들이 망라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북한의 말이 점점 험해지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성 욕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정책에 대해 ‘소 대가리가 웃다가 꾸레미가 터질 노릇’(2008년 4월23일 <조선중앙TV>)이라고 한 토속적 표현도 있고, ‘역도’ ‘괴뢰’ ‘사대매국노’ 등 냉전시대에 즐겨 사용하던 선전적 표현도 있다.

진흙탕을 같이 뒹굴자?

욕은 삼가는 것이 좋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국가에도 국격이 있다. 이따금 출근길에 보는 풍경이 생각난다. 대로변에서 양복 입은 사람들끼리 뒹굴며 싸운다. 뻔한 일이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나고, 사고 경위를 따지다, 둘 중 하나가 “어쭈 그런데 왜 반말이야. 너 몇 살이야?” 묻고, 그러다 욕이 나오고, 그때부터는 안 봐도 비디오다. 멱살을 잡고 뒹구는 양반들은 이미 왜 싸움이 시작되었는지를 잊었다. 다만 뒹굴 뿐이다. 북한이 욕한다고 우리도 욕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진흙탕에서 같이 뒹굴자는 말인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원문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4601.html